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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해
아본데일 칼리지에서 한국 유학생이 일본어를 가르치던 키위 교사를 찌른 사건이 있었다. 키위 교사는 자신이 그 학생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가끔 개인적인 모욕감이나 인종차별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자신은 다만 재미삼아 한 농담이었다고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 학생의 상처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어서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통해서라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부정적인 말, 잘난 체하는 태도, 묘하게 비꼬는 말투, 빈정거리는 표정 등이 얼마나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지를 모른다. 모를 뿐만 아니라 누군가 당신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면 즉시 부인(否認)한다.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공격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갈등은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데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라며 자신을 방어하거나 “정말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라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신 “나는 미처 몰랐는데 그렇게 힘들게 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다.
한 남편이 아내로부터 이혼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지금까지 가정을 위해 수고한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고 아내를 다구쳤지만 아내는 묵묵부답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한 남편의 주머니 속에 아내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여보, 당신은 당신의 수고를 알아달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지 당신 뜻대로만 하고 나나 아이들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어요. 당신이 화를 내면 우리 모두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매야만 했고 당신의 화가 풀릴 때까지 숨도 못 쉬고 살아왔어요. 당신은 그저 돈돈 하면서 우리가 쓰는 모든 생활비를 아까와했지요. 결혼한 지 20년 동안 당신은 주인이고 나는 종이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요. 여보, 그동안 나는 너무 불행했어요.”남편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더라도 관계의 회복을 원한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기 보다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깨지고 만다.
30대 후반의 미혼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엄마와의 관계도 소원(疏遠)했고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가 원만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제하던 남자들과도 번번이 관계가 깨져서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깊이 생각하던 그녀에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산골에서 자라난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때 학교에서 첫생리를 시작했다. 그 당시는 성(性)교육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엄마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자신이 맏이라 언니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한 그녀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엄마는 화부터 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어디서 못된 게 못된 짓은 먼저 하냐?” 그 이후로 그녀는 엄마와 마음의 담을 쌓고 지냈다. 엄마와 화해를 해야 자신의 인생이 바로 풀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그녀는 엄마를 찾아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못된 계집애. 그때가 언젠데 그 일을 지금까지 가슴에 꽁하고 묻어두었단 말이냐? 넌 정말 되먹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와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자신의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산골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그녀의 엄마로서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것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산골에서는 생리대를 구하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일, 일, 일로만 보였던 엄마로서는 딸의 생리가 결코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다. 그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말이 불쑥 나왔나 보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 일이 자신의 기억에는 사라지고 없지만 딸의 마음에 그토록 선명한 아픔을 주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딸도 엄마를 용서하고 예전의 가난했던 추억이 오히려 모녀(母女)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맺어주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자신이 자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부모들은 입버릇처럼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한다. 물론 자녀양육에 따르는 부모의 희생과 헌신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녀가 혹시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혹 자녀가 엄마 아빠의 어떤 면이 자신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면 은혜도 모르는 괘씸한 아이라고 화부터 내지 말고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이다.
앙드레 지드는 “참된 위선자란 자신의 기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정직하게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에 대해서는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금식도 하고 구제와 기도도 많이 하고 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이 참 감사하다고 떠벌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기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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