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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마음
마음이 한 번도 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한 마음의 상처와 상실감을 갖게 되었으며,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이런 상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이뿐인가? 살다보면 사고나 질병으로 몸의 상처도 생기고, 사람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시간이 가면서 대부분 잊혀지기도하고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어제의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에 불이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킨 시어머니와 시누이, 중간에서 명쾌하게 아내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 나약한 남편이 서운하고 밉다. 날 괴롭힌 직장상사, 나 대신 다른 동료를 지지해준 동료 생각만 하면 괘씸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동업을 했다가 낭패를 당했거나 사기를 당해서 엄청난 재산의 손실을 입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내가 상처받은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고 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처란 주고받는 것이다.
왜 우리 부모님은 형과 동생만 좋아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그 순간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약한 언행이 나타난다. 집에 오면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다른 가족들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노골적으로 “나 밥 안먹어!” 하며 문 꽝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온다 . 그런 행위 자체가 부모에게는 상처를 준다.
누군가 마음이 상해서 어제의 상처가 계속 남아있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도 함께 불행의 늪으로 빠진다. 어떻게 상한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내려놓아야 한다.
상처는 모두 과거의 일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데이빗 제레마이어는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등에 그 사람을 업고 인생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내게 상처준 시어머니, 시누이, 배우자, 그 사람… 나 자신의 등에 도대체 몇 명의 사람을 질 수 있을까? 내려놓아야 한다.
둘째, 은혜의 강가로 나가야 한다.
나 스스로 상처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얀마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와 그곳을 방문한 사람이 정글을 통과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거의 목까지 오는 진흙탕 연못을 통과해야 했다. 조심해서 통과는 했는데 방문객의 팔다리와 몸에 온통 거머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놀란 방문객이 거머리를 잡아떼기 시작하자 선교사는 소리쳤다.
“그러면 안됩니다. 갑자기 잡아떼면 거머리의 일부가 살갗속에 파고 들어가 상처가 덧나서 상태가 훨씬 악화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되죠?“
“최대한 빨리 발삼향 목욕물을 드리겠습니다. 그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거머리들이 갈고리를 풀어 아무 탈이 없습니다”
상처로 인한 원한이나 상한 감정은 마치 거미리의 갈고리와 같아서 쉽게 잡아 뜯어 팽개칠 수가 없다.억지로 덤비다가는 오히려 상처가 더 깊어진다.
나를 용서하고 너를 용서한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푹 잠길 때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원한이 힘을 잃기 시작한다. 그분께 받은 용서를 묵상할 때 아픈 상처와 원한은 서서히 아물기 시작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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