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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앞에서
산소에 갔다. 모처럼 삼남매가 다 모였을 때 한 번 올라가자는 시누 형님의 말씀대로 시간을 맞추어서 함께 출발했다. 시부모님들의 산소는 고향인 충청도 선산(先山)에 있다. 가는 길에 본 들판은 말 그대로 황금 들판이었다. 누렇게 고개 숙인 벼를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뉴질랜드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 들판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은 한 번도 벼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쌀이 쌀나무에서 자란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소에 올라가는 길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장이 되어 있었다. 시부모님 생각을 하니 울컥 눈물이 났다. 아버님. 정말 법 없이도 사실 분인 우리 아버님. 인물이 좋으셔서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 신성일씨 못지않았을 우리 아버님. 아버님은 젊은 나이에 디스토마에 걸려 고생을 하신 이후로 가정의 경제를 제대로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에 무능한 가장으로 사셨지만 누구보다도 나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다. 내가 둘째 예린이를 낳았을 때 우리 집에 찾아오셔서 포대기에 싸인 어린 것을 가슴에 꼬옥 안으시며 “아가야, 우리 집 찾아온다고 참 수고많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동은 어느 철학자의 현란한 문구보다 더 진한 것이었다. 이 우주 공간에 박혀있던 수많은 별 중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온 가족을 환하게 비춰주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버님은 어머니가 쓰레기를 비운다고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홀로 그렇게 돌아가셨다. 80년 동안 이 땅에 사시면서 장작 떠나실 때는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왜 그렇게 급히 가셨는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찾아갈 때면 언제나 활짝 웃으시던 우리 아버님. 그 얼굴의 주름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데 이제 그 분은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어머니. 병 든 남편 뒷바라지 하랴 한창 자라는 아이들 키우랴 무거운 생활고에 홧병이 생겨 오랫동안 답배를 끊지 못하셨던 우리 어머니. 키도 크고 멋쟁이이신데다 흥도 많으시고 장구도 잘 치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던 우리 어머니. 뉴질랜드에 딱 한 번 방문하셨을 때 나에게 파마를 해달라고 하셔서 엉겁결에 해드리고 보니 아이구 이걸 어쩌나, 머리카락이 볼성 사납게 파시시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셔서는 행여나 막내 며느리 흉잡힐세라 미용사가 집에 와서 파마약을 발라놓고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둘러대셨던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하시던 모습이 하늘 저편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어머니, 어머니…
시누 형님은 산소에 올라가면서 들국화 몇 송이를 꺾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참 꽃을 좋아하셨는데…” 문득 정신이 아득해진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셨다고? 나는 그 사실을 처음 듣는다. 문득 딸과 며느리 사이의 간격이 피부에 그대로 와 닿는다.
산소는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지난 달 추석 때 아주버님 내외분이 오셔서 벌초를 하셨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사는 것은 참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맏며느리는 또 어떤가. 그래서 대한민국의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우리는 둘러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는 장로이신 아주버님이 하시고 말씀은 목사인 남편이 맡았다. 함께 찬송을 부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나는 아예 손수건을 눈에 갖다 대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없었다. 계속 딸만 낳는데다가 그나마 어린 시절에 자꾸 죽어나가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아주버님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나가고 또 동생에게도 권유해 함께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한 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망한다는 말에 사로잡힌 시어머니는 사생결단 두 아들의 교회생활을 말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주버님과 남편은 더욱 간절하게 기도에 매달렸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주버님은 끝까지 효성을 다했고 남편은 남편대로 군대에 있으면서 매번 편지로 간곡하게 전도를 하자 결국 시어머님은 교회에 나가시기로 마음을 바꾸셨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부모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매를 맞고 쫒겨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믿음이 결실을 맺어 이제 시댁은 모두 예수님을 잘 믿게 되었고 조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예배를 마친 뒤 손으로 무덤을 쓸어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누 형님은 가지고 온 꽃을 처음에는 어머니 무덤 앞에 다 놓더니 거기서 반을 나누어서 아버님 무덤 앞에도 놓았다. 그리고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는 “엄마, 꽃 보고 많이 웃으세요. 꽃 보니 좋지?”, 아버님 무덤 앞에서는 “아부지, 엄마랑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사세요, 잉?”하신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모두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지금은 두 분이 천국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계시겠지.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사람은 죽어서 관 속에 눕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 들어가 앉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은 그 자체로 큰 메시지를 준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을 생각한다. 인생 그 자체가 역설적인 진리로 가득하다는 진실을 여기 산소 앞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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