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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때문에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수영을 못한다. 다들 부산 사람이 수영을 못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난 수영을 못할 뿐 아니라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향은 충청도이지만 부산에서 자란 나로서는 이상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여행을 가서 설악산 용소 폭포에 미끄러져 헤엄쳐 나오지 못해 의식을 잃었다가 거의 30분 만에 깨어난 해프닝도 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은 식당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컵 안에 들어있는 물만 보더라도 속이 울렁거리곤 했다. 넓게 펼쳐진 해운대 백사장에 “쏴아” 소리를 내며 몰려오는 파도는 곧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물이었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자네 두 아들은 물을 조심해야 돼, 그렇잖으면 아들을 잃을 거야!“ 하는 무당의 말이었다.
어린 시절 아주 가난한 동네에 살았던 터라 굿하는 무당들이 많았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에서도 두 서너 차례 굿판을 벌렸던 것 같다. 무당의 말은 어머니를 움직였고,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움직였다.
무당의 말은 그 당시의 어머니에게는 곧 신의 소리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과 물가를 갔다 온 그날은 하늘에서 퍼붓는 천둥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호랑이가 물어가 죽일 놈의 자식들…” 이 엄청난 저주의 말로 형과 내가 물에 가는 것을 막으셨던 어머니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머니의 넋두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놈의 영감태기….저놈의 영감 내가 안 미우면 사람이 아니지.”
부친은 젊은 시절에 금광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때 금을 캐서 호주머니에 금을 넣고 다니시면서도 어머니께는 금반지 한 번 해 준 적이 없으셨다고 하니 어머니는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그러니 화가 치밀 때마다 부친의 욕을 하셨던 것이다.
무당의 말에 의해 아들이 물에 가는 것을 그 토록 저지함으로써 불행했던 모친의 삶을 행복으로 전환해 보려는 시도였지만 그로 인해 그 아들인 나는 인생이 피어나기도 전에 익사하여 망칠 뻔한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서운 우리 집안의 종교 전쟁 이후에 극적으로 변하셨다.
무당도 버리고, 집안에 두었던 우상도 손수 부수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 때문이었다.
“먼저 간 영감! 살았을 때 좀 더 잘할 걸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부친에 대한 사랑의 말씀이셨다.
“얘야, 이 에미가 너희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남들처럼 물려줄 유산도 없고 부모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같아 미안하다. 그래서 널 위해 기도하는 것외에는 할 것이 없구나.”
해외서 목회를 하는 이 아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
예수 말씀 붙잡고 변화하신 그 어머니가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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