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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에 기름이 남아있나요?
남편과 함께 한 산책길에 젊은 부부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몸이 약해 보이는 아내는 별로 적극적이지 않아 보였지만 남편은 열심히 찾고 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부부 사이에 앉은 아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다. “도룡뇽 어디 있어? 도룡뇽 어디 있냐니까.” 아마 산책길 옆 풀밭에서 도마뱀을 본 모양이다. 아이는 너댓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아이의 짧은 혀로 도룡뇽 발음은 어렵다. 그래서 아이는 계속 ‘도룡뇽’을 ‘도동뇽’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잠시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만치 앞서가는 부부를 다시 만났다. 아이가 말하던 도룡뇽은 잡은 걸까. 아이 손에 아무것도 들려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서 아마 잡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만 아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는 울었다. 아까 ‘도동뇽’이라고 말하던 그 귀여운 입에서 울음소리가 배어져 나왔다. 엄마는 아이의 무릎을 보며 “까졌어. 까졌어.” 소리만 했고 아빠는 아빠대로 “그러게 왜 정신을 차리지 않고 걷고 있어?” 라고 나무랐다. 아이의 울음귀는 짧아서 금방 울음을 그쳤지만 나는 아이가 못내 안스러웠다.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아프겠다.” 라거나 “아플텐데 잘 참네.”라고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 부모는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울면 “뚝! 뚝 그치지 못해? 사내 녀석이 울긴.” 으름장부터 놓는다.
이제 네 살배기 아이가 정신을 차려서 산책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우리 문화는 남자 아이에게 유독 눈물을 거부하도록 가르치고 감정적인 표현을 억제하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고 강요한다. 이런 문화적 편견 속에 자라난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정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말았다. 그럼 남자는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속상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남자는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 혼란스러워한다. 따라서 여자들처럼 “나는 오늘 기분이 우울해.” 라거나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정말 속상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집에 들어가서도 아빠가 왔다고 좋아서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오늘 아빠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거든. 아빠가 좀 쉬어야겠으니 혼자 있게 해 줄래?” 라고 말하지 못한다. 다만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저리가라고 호통을 치거나 화가 난 김에 아이들을 때리기도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라고 배운 남편에게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열 처녀 비유가 있다. 열 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 왔기 때문에 다 졸고 있었는데 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다섯 처녀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어서 기름을 채우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결국 다섯 처녀는 신랑이 베푼 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다. 다섯 처녀는 이제 곧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들의 등(燈)에 기름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름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그들은 신랑이 베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중년기를 넘어서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자기의 문제를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강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문화적 압력 속에 성장한 남자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가면을 쓰고 살았기 때문에 이제 무엇이 가면이고 무엇이 자신의 진실인 줄조차 모른다. 그만큼 무디어졌다. 그러나 아내는 살면 살수록 남편이 주는 상처에 더욱 예민해진다. 아내는 갈수록 희망이 없다는 무서운 사실 앞에 직면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내는 이제 자신에게 이 결혼을 계속 유지시킬 힘이 남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허세를 부린다.
아내에게는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일로 쉽게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움과 기사도를 발휘하고 집에서는 가족들이 돈 때문에 쩔쩔매는데 굳이 자기가 내지 않아도 될 자리까지 무조건 자기가 돈을 내고 선심을 쓴다. 그런가하면 가족에게는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아내는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어처구니 없이 화를 내면서도 내 아내는 이렇게 취급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등불의 심지가 잘 타오르고 있으니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다섯 처녀처럼 남편 역시 자신의 생활에 대해 별다른 의식이 없다. 모든 것이 남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에 당연이라는 것이 있을까.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대하는 것이 예전같지 않다고 오히려 아내를 추궁한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난 이 관계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도 어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나가서 바람을 피웠어? 뭐했어? 내가 한 것은 오직 이날 이때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는 없어. 끝까지 자기 자신의 진실을 외면하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는 절망한다. 아내에게는 이제 더 이상 남편의 변화를 기다려줄 힘이 남아있지 않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다섯 처녀는 자신들의 등(燈)에 기름이 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기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국 신랑이 베푼 아름답고 풍성한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우리 부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조급함과 쉽게 화내고 쉽게 불평하는 삶의 스타일 때문에 아내가 자녀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그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막연히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아내는 존경할 수 있는 남편을 원한다는 사실을 남편들이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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