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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남편과 나는 지금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와 있다. 남편이 안식년을 시작하면서 로뎀장로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배명환 목사님과 7주동안 교환목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곳에서 여름을 지내던 배목사님에게 뉴질랜드 겨울이 춥지 않을까 걱정이지만 성경말씀에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했으니 그것도 주님께 맡겨야겠다. 배목사님, 사모님, 감기 걸리지 말고 잘 지내다가 오세요.
이곳에 오니 배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의 교역자분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권사님들이 어찌나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는지 정말 감사하다. 쌀을 사다 나르시고 반찬도 장만해서 갖다 주시고 과일과 음료수도 가득 채워놓으신 것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그분들의 수고와 헌신이 우리를 감동시킨 것이다. 그때 진정한 안식이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줄 때 사람은 쉼을 얻고 평안을 얻고 힘을 얻게 되는구나. 그것이 진정한 안식이구나.
문득 오래 전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오늘 미순이 생일이래요. 생일축하 노래 불러줘요.”
“어머 그래? 같이 축하해주자꾸나.”
한국에서 여고(女高) 교사로 있을 때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그날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고 말했다. 내가 흔쾌히 승낙하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곡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지만 가사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어?
안 그래도 많은데 왜 태어났니?”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막상 생일을 맞은 주인공은 다른 아이들을 따라 웃으면서도 자뭇 심각한 표정이 되곤 했다. 그때가 벌서 30년 전이니 왜 태어났느냐고 마치 고함을 지르듯 노래하던 아이들도 다 엄마가 되어 있겠지. 그리고 그들도 이제는 자기 아이들의 생일상 앞에서 노래하고 있겠지. 그들은 과연 예전에 불렀던 그 노래를 아들에게 그리고 딸에게 불러주고 있을까? 안 그래도 많은데 왜 태어났느냐고 꾸짖는 듯한 그 가사를 지금도 불러주고 있을까.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안 그래도 많은데 어쩌다보니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사랑받기가 힘든 걸까. 왜 이렇게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많고 까다로운 걸까.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겠다고 결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금의 모습 그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편과 아내들이 배우자를 고치려고 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약점을 노출시키면 상대방이 앞으로 더 좋게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신은 왜 그래? 당신 친구처럼 해봐.’ 라는 말은 배우자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쭉 빼게 만들 뿐이다. 아이에게 자극을 주어서 좀더 잘하게 하려고 꾸중을 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아이를 꾸중하고 야단치는 부모는 자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에게 실패와 좌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 누리는 가장 좋은 장소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가정은 언제부터인가 서로에게 의무를 강조하는 비판 장소가 되고 말았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어깨를 토닥여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보다 그들이 해야할 일을 다 했는지 추궁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돈을 더 많이 벌어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남편은 아내에게 살림을 똑바로 살라고 으르릉거리며 부모는 자녀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닦달한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함께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결국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져간다.
물론 하나님은 이 땅의 첫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사람은 놀고 먹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 일을 분부하시기 전에 맨 먼저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창 1;28)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일하는 존재로 존재하기 그 이전에 사랑받는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났음을 처음부터 선포하셨다.
‘조금만 더 잘하면 사랑하겠다’고 말하지 말고 ‘네가 어떠하든지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고 말하자. ‘당신이 변하면 사랑하겠다.고 말하지 말고 ‘비록 당신이 나를 실망시켰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겠다.’고 말하자. 그때 아내와 남편은 그리고 우리의 자녀는 힘을 얻고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온갖 더려운 속박의 줄을 끊을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여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예요.”
“얘들아, 너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야. 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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