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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일까?
게리 스몰리는 세계적인 가정 사역자이며 상담가이다. 그가 쓴 “남편이 바라는 아내”라는 책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어느 토요일 오후 자신은 한쪽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은 다른 쪽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TV만 시청하고 있던 게리는 그들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먹어보라는 소리를 하지 않자 점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어떻게 자기들끼리만 먹을 수 있지? 나도 뭘 좀 먹고 싶은데…” 크게 헛기침을 해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내를 슬쩍 곁눈질해 보았으나 아내 역시 움직일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결국 그는 부엌에 들어가서 손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 했다. 그는 아내가 야속했다.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둔할까? 남편을 우습게 알아도 분수가 있지.’
며칠이 지난 뒤 그는 아내에게 물어 보았다.
“여보, 그날 왜 나만 빼놓고 간식을 먹었지?”“당신 무척 심각한 표정이군요?”
“그래, 아주 심각해. 사실 말야 내가 밖에 나가서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왔으면 그 정도 서비스는 당연한 것 아냐?”
“제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때 당신 태도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투정을 많이 하는 줄 아세요? ‘빵이 너무 말랐네, 마요네즈가 너무 적게 들어갔어, 야채가 시들었잖아.’ 등등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요? 그날 만큼은 당신의 불평 섞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예요. 난 결코 잔소리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구요.”만약 당신이 남편이고, 밖에 나가서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아내는 마땅히 당신에게 정성스런 식사를 제공해야 하고, 남편이 무엇이 먹고 싶다는 눈치를 주기만 하면 당장 부엌에 들어가서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까? 아마도 “그럼 내가 뭐 잘못됐어? 무슨 여자가 결혼 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남편 입맛도 하나 못 맞춰? 빵도 말랑말랑한 것으로 사고 야채도 싱싱한 걸 사면 될 거 아냐? 그리고 마요네즈도 적당히 넣으면 되지 도대체 그만한 성의도 없이 어떻게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살겠다는 거야?” 하며 오히려 호통을 치지나 않을까?
그러나 게리 스몰리는 달랐다. 그 역시 처음에는 “분명히 내가 반찬 투정이 좀 심한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뭐 매일이라구? 우리 말은 바로 하자구, 정말 내가 언제나 투정했단 말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매일’이 ‘언제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상처를 받았던 몇 번의 기억을 의미한다는 한 여성의 말을 기억하고 참았다고 한다. 또한 놀라운 일은 그때 일로 인해 그는 전과 달리 항상 아내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는 습관이 생겼고 아내도 자신이 말만 하면 언제든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게 되었다고 한다. 실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의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고민을 했던 A와 B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입이 까다로운 남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식탁에 앉을 때마다 겁이 난다. 또 뭐라고 트집을 잡을까? 마음이 쿵쾅거린다. 이건 짜다 저건 맵다 인상을 쓰고 싱거우면 맛이 없다고 빈정거린다. 이쯤되면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식탁에 앉는다는 자체가 큰 고역이다. 그런데 하루는 A가 B에게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자신은 남편의 까다로운 식성을 고쳤다고 말했다.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날도 정성을 다해 찌개를 끓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기에 어찌나 화가 나든지 아무 말 않고 찌개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서 탁 부어 엎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던 남편은 그날 이후로 절대 음식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잘 먹는다고 하면서 B에게도 그 방법을 써 보라고 했다. 남편의 성격을 알고 있던 B는 겁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A가 성공한 방법이라니까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B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찌개를 식탁에 올려 놓았고 어김 없이 남편의 불평이 이어지자 용기를 내어 찌개 그릇을 싱크대에 가서 엎어 버렸다. 그런데 웬걸. 남편은 어디서 그런 못된 버릇을 배웠나며 식탁을 뒤집어 엎으면서 길길이 뛰는 바람에 B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을 뿐 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남편의 반찬 투정이 더 심해져서 B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말았다.
왜 어떤 사람은 말로 해도 변화가 되는데 어떤 사람은 찌개 그릇을 엎어버리는 과격한 행동을 해야 아내의 마음을 아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아내나 남편이 말을 할 때 그 말을 주의깊게 듣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배우자의 말에 오히려 말꼬리를 달면서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모든 책임을 배우자의 탓으로 넘겨 버리는 걸까?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그는 얌전한 축에 속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용기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느날 한 친구가 그에게 싸움을 걸었다.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친구에게 덤벼들었고 다른 아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싸움을 걸었던 친구가 오히려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울상을 하고 땅바닥에서 일어서며 쏘아붙였다. “흥, 나도 너처럼 일 주일에 두 번 고깃국을 먹는다면 너를 이길 수 있어.”그 말을 듣고 알베르트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고깃국이 나와도 먹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봉사 정신이 생겼다. 그 이후 그는 어느 목사님을 통해 아프리카라는 땅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의학을 공부한 후에 아프리카로 들어가서 90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흑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여 ‘원시림의 성자’로 불리고 있다.
왜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깊이 충격을 받고 헌신하는 데 반해 또 어떤 사람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들의 눈물이 보이지 않고 그들의 한숨이 들리지 않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아침에 그것이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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