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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지혜있게
살다보면 우리를 힘들게하고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 사람이 있다. 흔히 “그 인간”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남극,북극이나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난 갈등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주위사람들에게 갈등을 야기시키는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철없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갈등하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갈등에서 면제받은 사람은 없다.모든 사람이 갈등을 하고 있지만 갈등을 잘못 다스리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부부싸움 끝에 화가 치민 남자가 가스통에 불을 질러 가족의 생명이 함께 불에 타기도 한다. 화가 너무 나서 아이 뺨을 한 대 때렸는데 귀를 맞는 바람에 청력을 잃어버린다. 화가 나서 꼬챙이를 던졌는데 눈에 맞아 시력을 잃어버린다. 이 모든 일은 우리네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왜 이런 갈등이 일어날까?
갈등의 대부분은 이해관계 때문에 일어난다. 돈 때문에,부동산 때문에, 내가 차지해야 하는 그 무엇을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할 때 질투하고 시기하다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또한 종종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하고 나아가 나라 사이에 전쟁까지도 일어난다.
갈등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까?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이 세상에 욕심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다.사람들은 갈등을 만날 때 어떻게 처리할까? 사람마다 처리방법이 다르다.
먼저 상어형이 있다. 갈등할 때 자신의 뜻이 옳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타입이다. 한 번 물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상어처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매사에 이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인생을 쓸쓸하고 외롭게 보내기가 쉽다. 그렇다고 이 상어스타일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는 성경적인 진리를 확신하였기에 그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거북 스타일이 있다. 거북은 외부의 조그만 소리나 위협이 있으면 일단 머리를 몸통에 집어넣고 움직이질 않는다. 회피하는 타입이다. 갈등이 오면 “잠수한다” “나를 볼려고 생각하지 말라.” “세월이 약이겠지”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갈등은 시간이 가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거북이 타입이 좋을 수 있다. 반면에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조차 그대로 내버려두면 치명적인 결과가 올 수 있는 약점이 있다.
곰 스타일이 있다. 갈등상황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양보하는 스타일이다.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에서 양보하는 것은 좋다. 그리고 분명한 확신이 없을 때에나 어떤 문제에 대한 결론보다 관계가 더 중요할 때에는 양보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여우스타일이 있다. 절충형이다. 서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집하여 서로가 다 손해를 보는 것보다 절충하여 얼마의 이익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주로 정치가들이나 노사협상에서 이런 형태로 해결을 한다. 구약의 인물중 야곱과 같은 스타일이라 할수 있다.
부엉이 스타일이 있다. 서양에서 부엉이는 숲속 동물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양측이 만족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상대도 배려하는 지혜있는 행동을 한다. 현명한 부엉이 스타일은 문제도 해결하고 관계유지도 계속하고 모두가 승리하는 타입이다. 성숙한 사람이다.
그 어떤 스타일이든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갈등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든 갈등은 반드시 내 뜻대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만큼 위험한 생각이 없다. 나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뜻과 내 주장대로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정말 교만한 일이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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